2017년 개봉한 영화 <리얼>은 한국 영화사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평가, 복잡한 스토리, 그리고 실험적인 연출은 관객들에게 혼란과 흥미를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구성을 통한 시각적 의미 전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리얼>의 컬러 사용, 구도, 상징을 중심으로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고자 합니다.
컬러의 상징과 감정의 분열
<리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색채의 강렬함입니다. 일반적인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과감하고 극단적인 컬러 팔레트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캐릭터의 내면 상태와 세계관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장태영(김수현)의 ‘현실 자아’와 ‘환상 자아’를 구분 짓는 주요 도구가 바로 컬러입니다.
현실 장태영이 주로 등장하는 공간은 회색, 청색 계열로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표현되며, 반대로 환상 속 자아는 강렬한 붉은색과 검정 계열이 혼합된 공간에서 활동합니다. 이러한 색 대비는 두 자아의 갈등, 혹은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줍니다. 또한, 특정 장면에서 컬러의 급격한 전환은 감정의 변화나 긴장감을 암시합니다. 이는 일반 관객에게는 불쾌하거나 어지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감독은 이러한 감각적 자극을 통해 관객이 의도적으로 '혼란'을 경험하게끔 연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클럽 신(scene)에서는 형광색 조명과 과장된 색 보정이 적용되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즉, <리얼>의 컬러는 캐릭터의 심리, 세계관의 이중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장치이며, 단순한 '화려함'을 넘어 영화 전체의 주제를 담아내는 상징 체계입니다.
구도와 프레임 속에 담긴 이중성
<리얼>의 구도는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차별되는 강한 실험성이 존재합니다. 화면의 균형보다는 불균형을 의도적으로 택하고, 카메라 워킹도 종종 의도적으로 흔들리거나 각이 기울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같은 비표준적인 구도는 장태영의 혼란스러운 내면 세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제된 자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거울, 유리창, CCTV 화면 등 ‘반사’와 ‘투영’이 가능한 시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장치들은 현실과 허상,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기 어려운 구도를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지속적인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또한, 카메라의 구도는 종종 클로즈업과 극단적인 앵글을 사용하여 등장인물의 감정을 과장되게 전달하거나, 반대로 인물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존재 자체의 불안정함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연출에 그치지 않고, 정체성의 혼란, 현실의 왜곡, 인간 내면의 이중성이라는 테마를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구성입니다. 일반적인 내러티브 중심 영화와 달리, 시청각적 불안정성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점이 <리얼>만의 독특한 시도를 보여줍니다.
상징물로 드러나는 정체성과 통제
<리얼>은 다양한 소품과 시각적 오브제를 활용해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는 ‘가면’, ‘거울’, ‘정장’, ‘문신’입니다. 이 소품들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캐릭터의 정체성 혼란, 자아 분열, 외부 통제 등의 테마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가면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자아’를 의미하며, 진짜 장태영과 가짜 장태영이 서로를 인식하고 갈등하는 구조 속에서 핵심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거울은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드러내는 장치로,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거나 확인하는 모든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정장은 사회적 자아, 즉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가짜 자아’를 의미하며, 두 명의 장태영이 똑같은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자아 간의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문신의 경우, 개인의 과거와 현재, 혹은 내면의 고통을 나타내며, 캐릭터가 겪는 감정의 흔적을 몸에 남긴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물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주제 전달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며, <리얼>이 단순한 액션 누아르를 넘어서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로 해석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리얼>은 표면적인 내러티브를 따라가기보다는, 시청각적 감각과 상징을 통해 ‘느끼는 영화’로 접근해야 합니다. 컬러의 충돌, 구도의 왜곡, 상징물의 반복은 모두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자아의 혼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방식입니다. 한 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반복 감상과 분석을 통해 수많은 의미가 떠오르는 영화이기에 다시 조명할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통해 <리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